자전거타고 구석구석 돌아보는 원주문화답사기

원주 조엄 묘역 → 흥법사지 →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 원주 법천사지 → 원주 거돈사지
   
여행테마 1박2일
알고떠나기 자전거 하이킹은? 맑고 건조한 날이 많은 가을은 라이딩의 계절이다. 그 중에서도 친환경 에너지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자전거는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교통 수단이 되고 있다. 따르릉따르릉~ 벨을 울리며 바이크 라이더가 되어 원주의 원주문화답사기를 떠나보자. 자전거도 근육을 많이 쓰는 운동이다. 타기 전에 몸을 골고루 풀어주면 근육이나 관절의 무리를 막아 준다. 쉽게 생각하지 말고 떠나기 전에 준비 운동 잊지 말자.
지도로먼저보기-도착부터 출발까지

코스소개

하늘도 높고 바람도 시원한 가을을 맞아, 저만치 높은 하늘과 구름을 벗삼아 1박2일로 원주 여행을 떠나 봅니다.



조엄묘역


아침 일찍 도착한 간현역을 나와 우측방면 도로를 타고 한적한 길을 달리다 보면, 조암묘역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바라보며 좌측으로 난 2차선 도로로 들어서면 조용한 시골 마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400여 미터를 더 가면, 다시 조암묘역 이정표가 나오고 좌측으로 난 외길을 1Km 쯤 가면 조엄선생 묘역에 이른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문장에 능했다고 하는 조엄선생은 민생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일본 통신사로 가셔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재배에 성공하였고, 고구마는 구황작물로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크게 도움을 되었다고 한다. 조엄 선생께서 아니 계셨더라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군고구마의 달콤한 맛을 어찌 즐길 수 있었겠는가? 감사의 마음을 품고 가을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묘역일대를 둘러보며 맑은 공기를 듬뿍 먹으므니, 원주 가을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한껏~ 다음 출발지로 고고씽~



흥법사지삼층석탑, 진공대사탑비

왔던 길을 되돌아 간현역에 이르러, 지정대교를 건너 능촌 방면으로 자전거를 신나게 달리기로 한다. 하늘색이 너무 좋아 지정대교 위에 잠시 멈춰 서 숨을 돌리노라면, 넓고 깊지는 않지만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섬강의 물줄기와 만나게 된다. (이후로 섬강을 따라 달리게 되지만 섬강의 물줄기를 잘 볼 수 없다. 볼 수 있을 때, 실컷 보고 사진도 한 장 찰칵~) 목도 축이고 다리도 쉬었으니, 내쳐달려 흥법사지에 도착했다.




흥법사지는 아쉽게도 절은 사라지고 삼층석탑과 진공대사 탑비만 남아있다. 유심히 주위를 잘 둘러보면, 잘 자리잡은 주변 지형과 절터를 통해서 거대한 사찰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흥법사지 앞쪽으로는 남한강의 지류인 섬강이 흐르고 있고, 뒤쪽으로는 영봉산 자락이 펼쳐져 있다.


흥법사지는 1984년 강원도문화재자로 45호로 지정되었는데, 고려 태조 당시 왕사였던 진공대사 충담(忠湛)이 입적한 후 940년 진공대사의 부도탑이 있는 원주 영봉산 흥법사에 태조가 직접 비문을 지어 진공대사탑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전한다. 진공대사는 신라말기 구산선문 중 봉림산파에 소속된 스님으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 새로 나라를 연 태조 왕건이 왕사로 임명하고 흥법사를 중건해 주었다고 한다. 이후로 흥법사는 선을 수행하기 위해 모인 스님들이 수백명에 이르는 대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주변이 경작지로 변해있는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의 귀부와 이수가 남아있다. 돌을 나무나 찰흙 주무르듯 하였다는 신라 석공들의 혼이 남아 있는 듯, 정교하게 다듬고 살아있는 듯 쪼아낸 돌이 마치 손으로 빚어낸 듯 하다.


가을 빛이 한창인 너른 터에 석탑 하나, 탑비 하나가 외롭게 옛 영화를 말해 주는 듯 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스님들의 독경 소리와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웅장한 전각들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스님들의 모습이 보일 것 같기도 하다.


오랜미래신화미술관




흥법사지 절터를 나와 동화공단로를 타고 동화첨단의료기계산업단지를 돌아 42번 국도에 다다른 후 섬강 방면으로 땀이 나듯 달리면 문막교에 도착한다. 여기서 취병리 방면으로 우회전해서 약 20~30분을 달리면 오랜미래신화미술관에 도착한다.




한참을 달려왔으니 숨을 고르며 가만히 살펴보니, 여기저기 할머니의 무릎 맡에서 들을 수 있었던 오래되고 신성한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는 듯 하다.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은 한국 최최의 신화를 주제로한 미술관으로 흙조각, 목판화, 목조각, 붓그림, 한지부조, 청동, 설치미술 등 다양한 형식의 미술 및 수집품 들을 선보이고 있다. 신화주제는 크게 9가지인데, 신화와 상징, 고구려신화, 단군신화, 한국여신신화, 어머니대지신화, 도깨비신화, 저승길신화, 지신밟이신화, 세계 여신신화상징이 그것이다. 신화 해설을 곁을인 관람도 할 수 있는데, 어린이들은 동화의 세계를 어른들은 아득한 옛 할머니의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재밌고 신성한 기분을 느끼고 갈 수 있다. 아이들에계 동화책 한권을 선물하는 기분으로 함께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곳 문막 취병리 진밭마을은 일당산 자락의 깊은 산골이라 자연 구경하는 맛도 일품이 아닐 수 없다. 신화상징체험의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신화상징 만들기와 신화의례 체험도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을 듯 하다.

깊은 자연속에서 신화의 향기에 빠져 있고 싶지만, 다시 발길을 돌려 반계리은행나무를 보려 출발~


반계리은행나무




42번 국도변에 위치한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로 꼽히는 천연기념물 제 167호 반계리은행나무가 있다. 800년의 세월을 홀로 견딘 만큼 수형도 웅장하고 단풍이 든 모습 또한 볼만하다. 오랜 세월을 견디어 냈다면 어딘가 이울거나 치우친 면도 없지 않으련만 (뭐 이런 흔적들이 있어야 노거목 답다고들 하지만)  세월만큰이나 웅장하면서도 사방으로 균형있게 퍼져있는 모습이 주위의 나무들을 호령하는 둣 그 위엄과 기세가 대단하다.


이 은행나무의 진정한 미덕은 단순히 아름답다 것에 있지 않고, 오래된 거목이면서 균형잡힌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데 있지 않을까?  800년의 수령, 높이 32미터, 둘레 16.27미터의 기록만으로도 단연 노거목들 중에서도 으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계절 어느 때에라도 그 풍모와 위용을 감출 수 없겠지만, 높은 가을 하늘을 이고 단풍으로 옷을 삼은 가을이 되어서야 오랜 세월을 견디며 간직해온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듯 하다.


흥원창





여행 첫날 마지막 목적지인 흥원창에 저녁 노을이 물들어 갈쯤 도착하게 된 것이 여간 다행일 수 없었다. 온종일 가을 햇살을 비춰주며 함께한 해님이 오늘의 이별을 아쉬워 하는 듯 산마루에 남아 마지막 햇살을 불게 비춰주고, 섬강의 물결은 그 빛을 받아 붉게 물어가고 있었다. 밝은 낮시간대에 와서 강변을 따라 나있는 여강길을 걸으며 섬강 주변의 경관을 완상하는 것 역시 나무랄 것 없겠으나, 가을 여행의 흥원창은 역시 노을이 질무렵에 찾아와서 내내 감춰왔던 수줍은 순홍빛 섬강을 마주하는 것이 제일이라 하겠다.


섬강과 남한강의 합류지점이 위치한 부론면은 선사시대부터 삶의 터전이 되어 왔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12조차의 하나인 흥원창이 있어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어 자연히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 지면서 여려 고장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따라서, 통신수단이 빈약했던 시대에 타지역의 소식을 전하는 언론의 중심지 역할을 해고, 이에 “말이 많이 오가는 곳” 즉 부론(富論)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지역의 유래를 새기면서 섬강 주변의 산책 코스를 따라 가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코스는 옛나루터 (총 15.4Km), 세물머리길 (총17.4km), 바위늪구비길(총22.2km) 세가지가 있고, 산길과 물길을 따라 이어진 주변 경관은 도시 생활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제격이다.

자 이제, 섬강의 붉은 빛을 뒤로하고 내일의 여정을 위해, 기분 좋은 피로감과 둘째날의 기대를 안고 숙소로 향한다.


법천사지






전날 마지막 행선지인 흥원창이 있는 부론면으로 다시 달려, 49번 국도를 타고 남한강을 왼쪽에 두고 가다보면 법천사지 이정표가 보이고, 이정표를 따라 1.4Km를 가면 고즈넉한 폐사지인 법천사지터에 이른다.

입구에서부터 건너다 보이는 마을까지가 다 절터라고 하니, 법천사가 번청할 당시의 규모가 매우 크고 웅장했을 거라 짐작이 됐다. 임진왜란으로 법천사가 불타버리기 전에는 조선 초기의 내로라하는 권람, 한명회, 서거정과 같은 학자들이 시를 읽고 시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여전히 발굴 중인 법천사터에는 고려 문종 24년에 이 절에서 입적한 지광국사의 사리탑인 지광국사탑이 비와 함께 세원져 있었다고 한다. 탑은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답비만이 남았는데, 거북모양의 받침돌에 비몸을 세우고 그위에 머릿돌을 올려 놓았다. 받침돌 정면의 거북 얼굴은 부릅뜬 눈과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용의 형상을 하고 있고, 양 옆면에는 구름과 함께 어우러진 두마리의 용을 화려하고 사실적으로 조각해 놓았다. 비문에는 지광국사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정유산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가 중국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썼다고 한다.


탑비 주변으로는 건물터에서 발굴된 배례석, 광대, 불두, 파불, 연화문대석, 용두 등이 쇠락하여 스러진 옛 영화를 상징 증언하 듯 놓여있어 폐사지의 쓸쓸한 분위기와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요해지고 차분해지는 마음을 뒤로하고 또다른 사찰터인 거돈사지로 향했다.


거돈사지




거돈사지는 법천사지와 같은 부론면에 위치해 있으면 법천사지를 나와 부론면 사무소를 지나 남한강변의 도로를 따라 5Km를 가다가 정산리 방면으로 난 길을 따라 다시 5Km를 달리면 느티나무가 보여고 거기서 부터가 절터이다.

거돈사지는 사적 제168호로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나, 고려 초기에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약 7,500여 평에 이르는 절터는 흥법사지, 법천사지와 비교해도 가장 큰으로 보여 대사찰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웅전이 있었던 자리인 금당지 중앙에는 3층석탑이 남아있는데, 절터 주변 민가 우물가에는 탑 옆에서 옮겨왔다는 배례석이 놓여 있고, 상단부에는 연꼿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3층석탑외에 원광국사승묘탑, 원공국사승묘탑비가 있는데, 진품은 경복궁으로 옮겨지고 재현품만 남아있다.





거돈사지는 어제 들렀던 두개의 사지와 더불어 임진왜란 때 소실된 페사지로 1968년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정비되었다. 절터 주변 축대 위에는 아름드리 고목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가을을 맞이하여 고목은 천년 전의 옛 영광을 기억하며 여지없이 잎을 물들이고 있었다.


잘 보존되어 있는 사찰을 찾는 여행의 즐거움이 있다면, 고즉넉히 옛 기억을 간직하고 스러져있는 절터를 찾아 물들어가는 가을 정취 속에서 바쁜 일상의 어지러워진 마음을 달래는 것 또한 가을 여행의 즐거움임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즐거운 피로감 속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보람을 안고 또다른 원주 여행을 기약하면 1박 2일의 원주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 했다.